제 5차 박근혜 구속을 위한 멜번집회 시국선언문
본문
[멜번 교민 시국선언문]
이름을 바로잡기(正名) 위해 우리가 나섰다.
공자는 정치를 맡기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질문에 먼저 “이름을 바로잡겠다”고 하였다. 그것은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되는 것” 으로 그 이름에 부합하는 실제가 있어야 그 이름이 성립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하나, 대통령이 대통령 다운가?
세월호 304명의 생명이 목숨을 잃어갈 때 대통령은 없었다. 국가와 국민을 보위해야 할 대통령은 그렇게 국민을 버렸고, 사익에 눈 먼 비선실세의 꼭두각시로 국가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다. 시중에 떠도는 차마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소문들은 하나 둘씩 사실로 들어났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자존심은 끝없이 추락했다. 국민과의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렸고, 지금도 진솔한 사과와 반성보단 불통과 아집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민을 통합하고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할 대통령의 능력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둘, 정치가 정치 다운가?
국민을 잘 살게 하고, 상호간 이해를 조정하며,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정치의 본질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의 정치는 돈과 권력에 아부하고, 국민을 편가르며, 정의를 외면하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에선 국민을 찾기 어렵다. 정치가 더 이상 국민을 향한 봉사가 아닌 한 그들에게 부여된 권한에 어떠한 정당성도 없다.
셋, 역사가 역사 다운가?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비극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봤다. 동학 농민군이 잡아 죽이지 못한 고부군수 조병갑은 결국 살아남아 판사가 됐고, 동학교주 최시형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독립군을 때려잡던 만주국 장교의 딸이 대통령이 되어 항일의 역사에 사형선고를 내리려 한다. 이를 지켜만 볼 것인가! 역사는 처절한 자기반성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희망의 역사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친일, 반민족 세력의 국정 역사 교과서 추진은 결코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 없다. 오히려 그자들의 가슴에 주홍글씨만 깊게 새기고 말 것이다.
넷, 재벌이 재벌 다운가?
족벌 세습 재벌의 죄악은 어디까지인가? 28년만의 청문회에서 보았듯이 정경유착의 그 더러운 고리는 대를 이어 끊기지 않았다. 권력 앞에 비굴하고 약자에겐 무자비한 그들이 바로 우리의 재벌이다. 자신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추악한 권력과 자신들의 똘마니 재벌과 결탁했고, 결국 국민의 피같은 노후자금을 갈취했다. 총수의 사면을 위해 권력에 돈을 댔고, 자동차 회사가 부동산에 10조를 쏟아 붓는게 한국의 재벌이다. 미국의 대선후호였던 힐러리가 그렇게 외쳤듯 낙수효과는 거짓이다. 노키아가 망한 핀란드를 보라, 삼성이 망해도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
다섯, 언론이 언론 다운가?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수 십 명의 기자들이 그 앞에 앉아 열심히 받아 적었다. 그러나 질문하는 기자가 없다. 이것이 우리 언론의 현 주소다. 진실을 쫓던 기자들은 자리에서 쫓겨났고 그 자리를 기레기가 채웠다. 수구언론은 여전히 권력의 똥구녕을 핧기 바쁘고, 그나마 있던 진실한 기자들의 펜은 날카로움을 잃어갔다. 돈과 권력에 맞서 싸워야할 언론이 그들의 노예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지식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 현재의 언론은 더 이상 이 사회의 지적 해방구가 아니다.
여섯, 청춘이 청춘 다운가?
미국의 철학자 화이트 헤드는 청춘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렸다. “Life as yet untouched by tragedy” “아직 비극이 손닿지 않은 삶” 이라고. 청춘은 즐거움, 방황, 괴로움에 마구 빠져들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남은 생의 탄탄한 기초를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 우리의 청춘들은 어떤가? 입시지옥, 경쟁, 알바, 취업이라는 획일화된 삶을 강요 받는다. 다양성이 파괴된 한 줄로 선 사회. 그 속에 신음하는 우리 청춘에게 ‘비극이 손닿지 않은 삶’ 은 처음부터 존재 하지 않는다.
어제 우리는 대통령 답지 못한 대통령을 국민의 힘으로 탄핵했다. 이제 시작이다. 헌법재판소가 답할 차례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국민이 선택한 정당을 김기춘과 짜고 최순실의 입맛에 맞춰 해산시킨 바 있다. 민중의 뜻에 맞서지 마라. 당신들이 논하는 그 법으로 민중의 고귀한 저항권을 재단 할 수 없다.
정명(正名), 이름을 바르게 하는 것은 곧, 불의(不義)에 맞서 정의(正義)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어지렵혀진 방을 치우는 유일한 방법은 닥치는 대로 하나씩 치우는 것뿐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던 그 망막함도 조금씩 깨끗해 지는 방을 보면 곧 희망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정명(正名) 이 곧 혁명(革命)이다.
<2016.12.10 멜번교민일동>
케찹머스타드님의 댓글
응원하겠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