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지키자” 호주 학생·학부모 이례적 반발에 학교 ‘진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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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기성 기자 = 호주의 한 학교가 두발 단속을 하면서 학생의 머리를 깎은 일이 일파만파로 확산하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곤경에 처했다.
학교 측이 해당 교사의 행위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해고하자, 재학생들뿐만 아니라 졸업생, 학부모들까지 대거 반발하면서 이 문제는 호주 사회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번 일은 유아원부터 고교 3학년 과정까지 있는 멜버른의 명문 사립학교 ‘트리니티 그라마 스쿨’에서 발생했다.
15일 호주 언론에 따르면 새 학년을 맞아 학생들이 단체로 사진 촬영을 하던 지난달,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로한 브라운 교감이 두발 규정을 어겼다며 한 학생의 머리를 깎았다.
이 장면이 지난주 동영상으로 공개되면서 학교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교장과 학교운영위원회는 브라운 교감을 바로 해고하면서 매듭지으려 했지만, 졸업생과 재학생, 학부모까지 이 결정에 크게 반발했다. 이 학교에서 30년을 가르치면서 인기가 많던 교감 선생님을 이처럼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게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미 졸업한 전직 학생회장 및 부학생회장 50여 명이 브라운 교감의 강제 퇴직은 학생들의 배움에도 좋지 않을 결과를 줄 것이라며 학교 측에 공동으로 항의 서한을 보냈다.
이어 지난 13일 학교 운동장에서는 12학년(고교 3학년) 학생들 위주로 항의의 뜻으로 사복 차림으로 집회를 열었고 “브라운 선생님을 되돌려달라”는 구호도 외쳤다.
특히 13일 밤에는 재학생과 졸업생, 학부모 등 1천여 명 이상이 유례없는 회의를 열고 교장과 학교운영위원회 위원 전원의 사퇴를 촉구하며 16일까지 물러나지 않으면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또 청원사이트에서는 브라운 교감 지지 서명운동이 벌어져 1천 명 이상이 참여했고 한 학생은 “교감 선생님이 없다면 학교는 오합지졸이 될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에 운영위원회 위원 9명 중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포함해 3명이 사퇴하면서 파문은 더욱 커졌다. 이들은 해고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학교 공동체를 위해 물러난다는 뜻을 밝혔다.
학생들과 학부모, 학교 측의 이런 대립의 한쪽에는 학교 운영 방침에 대한 불만이 자리하고 있다고 호주 언론은 전했다.
현 운영진이 학교가 전통적으로 자랑해온 전인 교육을 버리고 입시와 성장, 수익 위주의 교육 목표에 중점을 두는 데 따른 불만이 교감 해고로 표면화했다는 것이다.
학생회장 출신자들은 앞서 편지에서 전인 교육을 내던진 현행 교육 방침은 학교 공동체의 대다수를 소외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많은 학생 눈에 브라운 교감은 학교의 전통적인 가치의 옹호자로, 새로운 학교 운영 방향에 정면으로 맞선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전직 학교운영위원장 2명도 공동 성명을 내고 많은 존경을 받던 브라운 교감의 해고 문제는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더 다양한 문제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cool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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